맹장염에 대하여

맹장염(충수염)에 대하여

 

충수염(appendicitis)은 맹장의 끝 부분에 위치한 돌기 형태의 기관인 충수(蟲垂)에 생기는 염증이다.

과거에는 다른 질병에 비해 상당히 흔하게 발생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어서 인류 수명 단축의 주요 원인이었으나 충수 절제 수술이 나온 뒤에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충수염 수술은 인류 평균 수명을 가장 단기간에 끌어올린 대표적인 수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충수염 때문에 요절했었지만 위생 관리와 항생제 치료를 동반한 이 질환의 수술에 성공하면서 인류 평균 수명이 대폭 상승하였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 대중들에게는 주로 ‘맹장염’으로 알려져 있고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나, 이는 오기이다. 맹장(盲腸, cecum)에 염증이 생기는 ‘맹장염(盲腸炎, cecitis)’은 별개의 질환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충수염은 맹장염과 다르다고 할 수 있고, 의학적으로는 권장될 수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워낙 실제 맹장염(cecitis)의 빈도가 적은 반면 발생례가 훨씬 많은 충수염을 맹장염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의사들도 맹장염이라고 하면 알아 듣는다. 따라서 이 문서에도 맹장염과 충수염 단어가 혼재되어 있다.

 

충수염의 원인

 

충수는 막창자꼬리라고도 불리는데, 소장의 말단부에서 대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꼬리처럼 튀어나와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런 충수에 림프 조직이 과형성 되거나, 대변덩이(fecalith)가 충수에 끼면서 폐쇄가 일어나게 된다. 폐쇄된 충수에 미생물들이 번식하게 되고, 염증이 생기면서 충수염으로 발전하게 된다.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게 되면, 충수가 팽창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혈액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괴사하게 되는데, 괴사한 조직이 터지게 될 경우 복막염으로 발전하게 된다.

대중들 사이에 널리 퍼진, “수박씨나 머리카락 같은 것을 자주 혹은 잘못 삼키면 걸리기 쉽다”는 속설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확률이 낮기 때문. 그러나 실제 그런 케이스가 전체 환자의 4퍼센트 정도는 되므로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수박씨, 머리카락, 작은 돌 등의 작은 이물질은 삼켜도 수 일내에 대변에 섞여 나오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소수의 경우가 걸려서 충수염에 걸리는데,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한 두개 삼켜도 소화 과정에서 대변 덩어리에 섞여버리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그쪽으로 끼어 들어가기가 꽤 어렵기 때문. 우연히 내장에서 소화물들이 똥이 될 때까지 그것들만 제대로 안 섞이고 따로 놀다가 충수까지 끼어 들어가야 충수염이 되니 확률이 낮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런 환자도 있긴 있으므로 일부러 먹는 건 안 된다. 충수염의 95퍼센트, 즉 대다수는 대변이 끼거나 임파선 면역 활동 문제로 발생하는 거라 생활 습관으로 예방이 안 된다. 그냥 운 없어서 걸리면 걸리는 것이다.

사실 충수염은 충수가 막혀있는 관(맹관)이라서 여기에 음식물(사실상 설사)이 끼면서 막히니까 염증이 생기고 괴사가 되는 질환인데, 이 자체는 빨리 잘라내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제 시간에 수술을 받지 못하고 방치하게 되면 염증세포와 대장 내용물(그러니까 설사)이 밖으로 새면서 복막염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충수염의 증상

 

충수염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우측 하복부(정확히는 맥버니점이라고 한다)의 압통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누워서 오른쪽 아랫배를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반발 통증이 느껴지거나, 오른 다리를 배에 붙이려고 할 때 통증이 심해진다면 충수염을 의심하여 병원을 방문할 수 있다.

특히 다른 복통들과는 다르게, 변을 보더라도 그 통증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또한 아팠다 말았다 반복되는 통증이 아닌 꾸준히 지속적으로 아픈 통증이며, 이 통증이 시간이 갈 수록 오른쪽 배 아래에서 배 전체로 퍼지게 되는 특징이 있다. 피로가 빨리 찾아오고 식욕이 없으며 만사에 의욕이 저하되는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 발열, 몸살과 오한 증세도 온다. 몸살과 오한 증상이 오는 이유는 혈액에 염증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복부의 통증은 흡사 옆구리를 누군가 칼로 푹 찔러 놓은듯한 느낌이 든다.

미묘한 통증에 민감한 사람의 경우 1~2주일 전부터 충수염의 조짐을 느끼고 있다가 진즉에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극초기의 경우 약한 통증이 맥버니 포인트 근처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 빠르게 병원에 가면 치료 기간도 짧아지고 수술 전후의 고통도 적다.

충수염에 걸리면 걷지 못 한다고들 하는데, 충수염으로 인한 통증과, 충수염의 예후는 의외로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검사를 해보니 충수가 제대로 틀어 막혀 돌 같이 된 상태였다거나, 심지어 아예 터져서 난리가 난 상황임에도 별 통증이 없어서, 검사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충수염의 치료

 

약물 치료로는 원인 해결이 되지 않으며,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 현대에는 이 정도의 복막염 또한 복강경 수술로 처치가 가능하지만… 최소 3주 이상은 입원할 각오를 해야 한다. 또한 복막염까지 병이 커지면 한마디로 소화기관 전체가 엉망으로 망가져버렸다는 것인데 이걸 회복하는 과정이 상당히 괴롭다.

수술은 간단히 말해서 충수를 잘라낸다. 맹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기에 흔히 맹장 수술이라고도 말한다. 맹장은 충수가 붙어있는 대장의 일부분이고 배꼽과 골반뼈 사이를 살짝 째고 손가락을 넣어서 대장을 밀어내주면 충수가 튀어나온다. 그러면 역으로 헤집고 들어가서 클립하고 자른 후에 구멍을 꿰매주고 피부를 꿰매면 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2-3바늘 꿰맬 정도로만 째면 끄집어낼 수 있다.

이후에는 복강경 수술을 주로 한다. 전신 마취 후, 배꼽을 뚫고 내시경 카메라를 들여보낸 뒤 맥버니점을 절개해서 (1~2바늘 정도) 수술 도구를 넣고 잘라내기도 하고 요즘은 레이저를 사용해서 자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래 복강경 수술의 경우 수술 절개 부위가 적어서 회복 기간이 빠르지만, 애초에 작게 자르는 충수염에서는 사실 큰 장점은 없다. 의사들의 복강경 훈련을 겸해서 시행한다고 보면 된다. 굳이 장점이라면 작게 자르더라도 복강경 쪽이 수술 부위가 적은 건 사실이라 미용상 더 이득이라는 점과 2~3일정도로 입원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점 정도다. 그런데 복강경 수술은 다만 절개 부위가 적을 뿐이지 환자의 몸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예전 수술 방식과 똑같다고 한다. 그리고 복강경 수술이 조금 잘못돼서 염증이 새어나온 경우 고열이 생겨 1주일 이상 입원도 할 수 있다. 38도는 기본이고 수시로 찾아오는 오한 때문에 밤에 잘 수가 없다.

수술의 난이도가 쉽긴 해도 사실은 수술 중에서 쉬운 것인지라, 드물지만 괴상한 의료 사고가 생기곤 하는 수술이다. 충수가 있는 위치가 해부학적으로 묘하게 헛갈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근처에 비뇨기, 여성의 경우 자궁도 존재한다. 그리고 감염으로 인한 염증 부위를 절제하는 수술이며 심한 염증을 잡기 위해 약도 꽤 써야 하고, 주변 장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결국 해부/생리/면역/병리/약리학 전부가 꽤나 소소하지만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는 기초 의학 전반을 제대로 요구하는 대표격 수술이다. 수술 이전에 현대 의사로서의 능력을 묻는 수술인 셈. 게다가 ‘일단은’ 개복 수술이기에 기술적인 의미의 수술 능력도 은근히 꼼꼼하게 적용된다. 써전(외과의사)은 타고난다는 말도 있지만, 최소한 현대 의사는 철저한 교육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는 매우 간결하면서 강력한 예시인 셈. 수술의 기술적으로는 간단하나 그 수술에 기초의학적으로 요구되는 지식량을 따져보면 절대 만만하지 않다.

제약 회사가 아스피린 만드는 수준으로 간단한 수술이고, 심지어 현대에는 복강경으로 구멍만 뚫긴해도, 배를 째고 염증이 심한 내장 일부를 절제하는 개복 수술이기 때문인지 수술 당일날은 무통주사니 진통제니 동원해도 꽤 아프다.

가끔 충수돌기염과 관계 없는 전혀 다른 병으로 개복 수술을 하다가 즉석에서 환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채로 충수절제술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개 이 때 충수절제술을 해주는 이유는 수술 후 유착이 걱정되는 경우이다. 특히 원래도 유착이 심한 사람이거나, 수술 자체가 큰 수술인 경우 등등은 수술 후 조직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유착으로 인한 충수염이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원칙상 충수절제술을 할 수도 있다고 미리 경고하고 수술을 해야겠지만, 수술 종류가 원래 충수와 무관하면 경우에 따라 미처 못할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충수가 학문적으로야 무슨 면역 작용과 관련 있을거 같다고는 한다지만, 실제 실용적으로 보면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에 있으면 병이나 일으키는 기관이니 정말 없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니 사전 허락 없이 뗐다고 해도 수술장 사정 상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면 오히려 수술을 잘 해준 것이니 그렇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

옛날에는 전신 마취를 한다는 점을 악용. 어린아이가 충수절제수술을 하면 수술 후 포경 수술까지 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개복 수술 과정에서 내부의 복수를 뺄 목적으로 튜브를 꽂은 채 봉합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회복 기간 동안 소변을 볼 때 날카로운 것으로 전립선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으며 의사들도 경험적으로 이런 사례를 인지는 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모르는 듯 하다. 튜브를 제거할 경우 이 증상은 바로 사라지니 걱정하지 말자.

사전 절제는 오지 여행 중에 터지면 대책 없는 병 중 하나로, 고산 등반을 즐기는 사람이나 해외 출장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별 탈이 없는데도 충수를 잘라내기도 한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어도 일단은 “개복 수술”이다! 작정하면 의사가 자가 수술도 하는게 가능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정말 답이 없는 게 아니고서야, 오지에서 배를 째는 건 심히 곤란한 일이라서 이를 강행하는 것.

선박 업계 종사자들 역시 발병하면 답이 없다. 연안에서 조업하는 어선이나 하루 단위로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은 그나마 괜찮지만,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에서 맹장염 환자가 발생하면 웬만큼 육지에 가깝지 않은 이상 헬기도 닿질 못하는 일이 생긴다. 배에 승선하기 전에 충수를 미리 잘라내고 가는 사람이 많다. 이 문제는 해군의 군함도 얄짤없어서, 세종대왕함에서도 수병 한 명이 급성 충수염을 호소한 적이 있으며, 이 병사는 일본의 해상자위대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육지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잠수함도 예외는 아닌데, 소련 붕괴 직전에는 잠수함 한 대에서 승조원 한 명이 맹장염을 호소하였고 해당 잠수함은 긴급하게 부상, 서방 함대의 도움까지 받아 해당 병사의 수술을 진행했다고 한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던 어느 캐미컬 선박 기관사도 중국 앞바다에서 5일간 끙끙 앓다가 무사히 한국 땅을 밟고 구사일생 했더란다. 일반 복통과는 다른 쎄한 아픔이 있었지만 헬기를 띄울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왔다고. 압권인 건, 오전중에 울산에서 정밀 검진 후에 다시 배로 가서 모든 짐 싸서 하선하고, 4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광역시의 본가까지 왔다. 그리곤 집에서 집 밥도 잘 먹고, 다음 날 아침에 안경까지 새로 맞추고 병원에 가서 오후 4시에 수술을 받았다. 심지어 복막염으로 진행하지도 않았다. 수술 전 검사 때도 생각만큼 아파하질 않아서 오진인 줄 알았는데, 정밀 검진 초음파 CD를 보고서야 증상 확인을 하고 수술 결정을 했다고. 물론 이건 경우에 따라 다르고, 이 경우에는 충수염 자체가 급성이 아니었던 것도 있기에 절대로 섣불리 일반화 하지 말 것. 여담으로, 이 환자의 충수돌기는 염증으로 퉁퉁 부어있었고 일부 부위는 아주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의심이 간다거나 장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여 무턱대고 소염제나 항생제를 복용하는 건 곤란하다. 통증을 가리게 되어 정확한 상태 판단에 어려움을 주게 된다.

과거 의학 기술 및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도 충수염을 ‘예방’하기 위해 이렇게 사전에 충수를 절제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과도한 수술을 지양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서 앞서 말한 오지나 선박 항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잘 하지 않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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